2021년에 가장 이쁜 연예인이 누구냐고 하면 김태희, 김희선이 떠오르잖아.
그럼 100년 전 1920년대엔 누가 가장 예쁜 미인이었을까? 바로 장연홍이였어.
장연홍은 1911년에 평양에서 부잣집 딸로 태어나.
하지만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장연홍네 집안은 급격하게 어려워지게 돼.
이후 그녀는 14살 때 평양에서 제일 유명한 권번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녀는 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1920년대 기생의 수입이 서울 유명 기생의 경우 월수입 50원~ 300원대였어.
이때 쌀 한 가마니가 7-8원, 막노동꾼 월급이 15원 정도였으니 당시의 기생의 수입이 오늘날로 치면 연예인급 수입이었던 거지.
아마 장연홍은 어려워진 집안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권번에 들어가게 된 거 같아.
사실 기생은 조선의 춤꾼이며 악기 연주자로써, 가야금, 장구, 대금 등 기악의 대가였으며,
궁중 무용과 사자무, 승무 등 춤의 전무가 이자 글과 그림에도 능통했던 종합예술가였어.
즉, 장연홍은 종합예술가로써 성장하기 위해 평양에서 제일 유명한 권번에 들어간 거지.
권번은 오늘날로 치면 jyp, sm, yg 같은 연예 기획사인데,
신규 스타를 발굴하거나, 트레이닝, 데뷔, 활동 섭외, 출연료 배분 등 여러 가지 일을 맡아줬다고 해.
장연홍이 기생이 된 후엔 시조, 가곡, 가야금, 거문고, 한문, 시문, 사군자, 일어까지 다양한 장르를 할 수 있는 엄친딸로 성장하게되.
뿐만 아니라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눈매와 사람을 금방이라도 삼킬듯한 표정으로 비활 비누의 모델 활동도 하게 되지.
하지만 이러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남성들의 스폰서 제안, 재력가들이 소실(첩)로 들이려는 욕심, 원하지 않는 순결의 위협 등 많은 고난이 있었다고 해.
대표적으로 을사오적의 매국노 이지용이 장연홍에게 엄청 들이댔었는데,
거금 1만 원을 줄 테니 자신의 애첩이 되라고 말하기도 했어.
그때 당시 1만 원은 지금으로 따지면 약 12억 5천 정도 되는 돈이야.
하지만 장연홍은 이지용에게 “나라를 욕보인 더러운 자에게 가느니 죽음을 선택하겠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정조를 지켰다고 해.
장연홍은 기생생활을 하는 동안 그 누구에게도 순결을 주지 않았다고 하며, 자신의 낭군만을 기다리는 낭만파였다고 하지.
하지만 남성들로부터 모진 수모가 계속되자 21세에 돌연 상해로 유학을 떠났어.
실제로 장연홍은 자신과 친한 언니에게 이런 편지를 남겼다는데,
"언니! 나는 고국을 떠나 끝없이 가려 합니다. 나는 곱게 살고 뜻있는 죽음을 하라던 언니의 말씀에 정든 평양을 떠나겠습니다. 이 더럽힌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는 언니의 말씀에 감복하여 나는 떠나는 것이외다."
이런 말을 남기며 상해로 떠났지.
하지만 상해에서 어떤 사건으로 영사관에 불 들려 갔다는 소문만 있을 뿐 이후에 행적은 대해선 전혀 알 수 없게 돼버렸어.
이상 장연홍의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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