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 VS 정우성, 당신이 몰랐던 17가지 TMI
이정재
전주 이씨로 잘생긴 남자가 많다는 B형이다.
어린 시절 집안이 가난했다고 한다. 사실 친가 쪽은 의사 집안, 외가 쪽은 양조장 경영으로 잘 살았지만 의사였던 할아버지가 연달아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마한 것이 원인이 되어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고. 이정재는 어린 시절에 이사를 다니면서 화장실이 바깥에 딸려 있는 단칸방에서 생활했으며, 고등학교 때는 등록금을 내지 못해서 반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매를 맞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압구정동 카페에서 서빙 알바를 하다가 기획사 매니저의 눈에 들어서 모델로 발탁되었다. 이후 모델과 배우를 병행하다가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보디가드 '백재희' 역을 맡아서 과묵함과 깊은 눈빛 연기를 보여줘 떡상했다. 사실 이때 이정재는 경력이 있던 다른 배우들에 비해 연기력이 좋지 않았기에 그냥 말을 안 시켰던 것인데, 이게 의외로 대박이 났다고.
연기가 정말로 즐겁다고 느낀 건 90년대 말 정우성과 함께 찍은 영화《태양은 없다》부터였다고 한다. 여기서 이정재는 정우성과 평생을 함께 하는 친구 사이로 발전했으며, 이 영화 덕분에 1999년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이때 이정재의 나이가 27세였는데, 최연소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지금도 이 기록은 깨지지 않고 있다.
정우성과는 청담동 부부로 불리며, 같이 패션 사업도 하고 CF에도 출연하는 등 절친한 사이이다. 서로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만나며, 같이 영화 보고 밥 먹고 술 마시며 지낸다고. 재밌는 건 둘이 그렇게 친한데도 아직까지 말을 놓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정우성이 말하길, 말을 놓지 않는 게 편하다고 이야기했다.
이정재는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화가 나 무용가가 되었을 거라고 말했으며, 실제로 어렸을 때 건축 인테리어나 미술 쪽으로 직업 방향을 잡았었다. 하지만 성적이 따라주지 못해서 결국 미대는갈 수 없었다고. 대신에 아트스쿨 같은 직업학교에서 인테리어와 건축을 공부했다.
2021년 10월 2일, 오징어 게임의 엄청난 파급력에 힙입어 처음으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했다. 한국 중년 남자 배우들이 대부분 인스타그램 계정이 없던 걸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다. 오징어 게임이 공개된 지 2주 이상 지나고 개설했지만, 개설한 지 10일 만에 팔로워 수 340만 명을 달성하는 등 놀라운 기록을 달성하였다.
정우성
정우성은 초계 정 씨로 187cm의 훤칠한 키에, 80kg의 몸무게를 소유한 늘 짜릿한 배우이다.
서울 남성초 졸업, 동양중 졸업, 경기상업고등학교는 중퇴하였다.
2남 1녀 중 막내로 찢어지도록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정우성은 서울 동작구 판자촌 산동네에서 살았는데, 얼마나 가난했었냐면 재개발 지역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남았던 집이 자신의 집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183cm까지 자랐다고 한다. 키가 너무 큰 게 싫어서 구부정 거리며 다녔으며, 너무 키가 크니까 배우 하기에는 어렵다는 얘기까지 들었다고 한다.
유년 시절은 돈을 벌기 위해서 학업보다 알바를 많이 했으며, 키가 큰 덕분에 중학교 3학년 때 서문여자고등학교 앞 햄버거 집에서 재수생으로 속이고 알바를 했다고 한다. 이때 정우성의 외모에 반한 여학생들이 줄지어 몰렸으며, 햄버거 가게 매출이 2배 이상 오르는 등 그 효과가 어마어마했다고.
커피숍에서 알바를 하다가, 업계 사람에게 캐스팅되어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된다. 여기서 학업과 연기를 위해 경기상고를 중퇴했다고 한다. 이후 검정고시를 따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정우성의 최종 학력은 중졸이다.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다. 한효주가 SBS 한밤의 TV 연예에서 인터뷰를 할 때 정우성을 보자마자, "와 연예인이다."라고 말했다고 하며, 한가인 또한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정우성을 본 적이 있는데 남편인 연정훈이랑 옆에서 그저 멍하니 정우성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 찍혔을 정도였다.
스스로 잘생겼다고 자처하는 몇 안 되는 남자들 중 한 명이다. 그가 잘생김을 뽐낸 가장 유명한 발언은 바로 "짜릿해. 늘 새로워. 잘생긴 게 최고야."
무릎팍도사에서 데뷔 초창기에 고소영에게 마음이 있었다는 걸 비치기도 했다. 고소영과 사귀는 줄 알고 있었던 정우성의 어머니가 장동건과 고소영이 결혼할 때 매우 아쉬움을 비추기도 했다고.
대표적인 탈모 연예인이었다. 데뷔 시절인 20대 초부터 M자 탈모가 심했다. M자인데다가 좌우 탈모 상태가 비대칭이기까지 했다. 나이가 20대 중반으로 가면서 탈모가 더 심해졌는데, 결국 모발이식 수술을 받았으며, 모발 이식 경과는 매우 훌륭하다. 당시에는 국내 모발이식 기술이 발전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모발이식 실패 사례가 매우 많았지만, 정우성의 모발이식 성공사례를 통해 많은 탈모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이상 이정재와 정우성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