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문즉설의 伸, 법륜스님의 모든 것
법륜스님, 속명은 최석호. 1953년 울산 울주군 신기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사회운동가, 구호 운동가, 환경운동가 등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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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엔 종교는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해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꿈이 과학자였다고. 그러다 어느 날 분황사에서 우연히 도문 스님을 만나게 되는데, 도문 스님과의 문답 중 사람의 ‘태어남’이전과 ‘죽음’이후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고, 절에 오면 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는 도문 스님의 말에 이끌려 불교에 입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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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에 절로 들어갔지만 경주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절에서는 승복을 입고, 학교에서는 사복을 입는 생활을 했다. 당시에 황룡사 9층 목탑을 복원하겠다는 꿈을 세우고 주말마다 고철을 주우러 다닐 정도로 열혈 불교 소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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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이 고등학교 3학년일 때 스승 도문이 문득 찾아와 “넌 수재여서 동국대 불교대학에 수석으로 합격할 것이다. 동국대 교수로 활동하다가 총장을 거쳐 교육부 장관이 되어 국민에게 이바지하라.”라고 권했다 한다. 하지만 법륜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 수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스승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이후 법륜은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으며 일반인 신분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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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불교 포교활동과 사회운동을 열심히 하게 된다. 그러다 1979년, 민주화 운동권의 자금책으로 오해받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게 된다. 고문을 당하며 분노의 감정에 휩싸였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불교의 제1계율인 '살생하지 마라'와 사회운동의 필요성을 깨달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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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은 사회운동을 하면서 부당한 권력 행사에 대해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불교를 보며 자괴감과 회의감을 느꼈다고 한다. 또한, 법륜은 자기 자신에게도 실망하는 사건을 겪게 되는데, 어느 날 몸을 다친 군인 한 명이 법륜이 있는 절에 찾아와 자신이 ‘중’이 되겠다 말하자, 그 사람을 고통에서 구해주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빨리 보낼 수 있을까, 다른 절을 소개해 줄까?'같은 궁리만 하였다고 한다. 법륜은 이런 자신의 모습에서 혐오감을 느꼈으며, 불교를 포기할 정도로 회의감을 깊게 느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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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법륜은 미국으로 떠나게 되는데, 여기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서암 스님과 만나게 된다. 법륜은 우연히 만난 서암 스님과의 대화중 자신의 부족함과 한국불교에 대한 불평을 여러 시간 늘어놓게 되는데, 서암 스님이 법륜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다가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려는 사람이 ‘중’이고, 그 사람이 있는 곳이 ‘절’이며, 그것이 바로 ‘불교’라네”라는 말을 법륜에게 전하였다. 법륜은 그 말을 곱씹으며 자신이 10년간 노력한 불교개혁에 대해서 자신의 눈으로 본 불교가 곧 불교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지금껏 해왔던 모든 것을 멈추고 부처님의 근본 이치부터 실천하자는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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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이 한국으로 돌아오자 도문 스님이 법륜에게 ‘절 안에서 활동하라’는 권유를 하게 된다. 이에 법륜은 “도에 안팎이 없는데 왜 안에서 활동하라고 하십니까?”라고 질문하자 “야 이놈아, 네가 밖을 고집하니까 안이 생기지 않느냐"라고 꾸중을 들었다고. 이에 법륜은 자기가 밖을 고집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고, 머리를 깎고 스님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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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은 환경과 빈곤 퇴치, 통일과 개인의 행복이라는 4가지 수행 덕목을 정했으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정토회’를 설립하게 된다. 이후 '독립운동 유적지 순례', 북한 동포 돕기 100만 인 운동, 에코 붓다 운동 등 국제구호, 남북통일, 환경운동을 전개했으며, 즉문즉설을 통한 개인의 행복활동도 이어나가게 된다.
이상 법륜스님의 이야기 끝!